
몇 년 전 케이크 가게에서 일할 때, 제가 주문받은 케이크를 포장대에서 살짝 떨어트린 적이 있습니다. 포장은 잘 되어 있었지만 크림과 토핑이 많아서 모양이 흐트러졌고, 바쁜 시간에 마지막 재고였기에 저는 손님이 못 보셨을 거라 생각하고 그냥 드렸습니다. 하지만 손님은 멀리서 그 장면을 보셨고, 케이크를 받자마자 확인하시더니 제게 따지셨죠. 그 자리에서 연달아 사과드리고 환불 처리했지만, 이 일은 지금도 제 안에 생생하게 남아 있습니다. 단순히 지나간 실수가 아니라, "나는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으로 여전히 돌아오곤 합니다.
우리는 왜 자신을 시간 속 동일한 존재로 인식하는가
철학에서는 인간이 자신을 시간 속에서 지속되는 하나의 존재로 이해한다고 설명합니다. 과거, 현재, 미래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으려는 욕구가 있다는 겁니다. 제가 그때 케이크를 떨어트린 순간과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 사이에는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저는 여전히 그 사건을 "내가 한 일"로 받아들입니다.
이 자아 동일성 유지 욕구는 심리학적으로도 근거가 있습니다. 우리 뇌는 기억을 통해 자아 개념을 형성하고, 과거의 사건들을 현재의 정체성과 연결 짓습니다. 특히 부정적인 사건일수록 이 연결고리가 더 강하게 작동합니다. 단순히 "그때 실수했다"로 끝나지 않고, "나는 그런 실수를 하는 사람이다"라는 해석으로 확장되는 겁니다.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인간은 부정적인 사건을 상황보다는 자신의 내적 특성과 연결 짓는 귀인 편향을 보입니다. 케이크를 떨어트린 건 바쁜 시간대에 정신없었던 상황적 요인이 컸는데도, 저는 그걸 제 성격이나 능력의 문제로 해석했습니다. "나는 책임감이 부족한 사람"이라는 식으로요. 이런 해석이 반복되면서 하나의 행동이 자아 개념에 스며들고, 결국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믿음으로 굳어집니다.
실수를 현재로 끌고 오는 감정의 역할
제가 그 사건을 아직도 기억하는 이유는 단순히 일이 크게 잘못돼서가 아닙니다. 그때 느꼈던 부끄러움과 후회가 너무 강렬했기 때문입니다. 손님께서 따지실 때 얼굴이 화끈거렸고, 제가 얼마나 비겁하게 행동했는지 깨달았던 그 순간의 감정이 기억을 더 또렷하게 만들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정서가 결합된 기억일수록 더 오래, 더 생생하게 남는다고 설명합니다. 철학적으로도 인간은 감정과 분리된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통해 세계를 경험하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실수는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감정이 결합된 기억으로 남고, 그 감정이 현재까지 영향을 미칩니다.
솔직히 이건 저만의 문제가 아닐 겁니다. 누구나 오래전 실수를 떠올리며 얼굴이 붉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그때 그랬어야 했는데"라는 후회는 시간이 흘러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 경험상 이건 좀 다르게 해석할 여지가 있습니다. 그 실수 이후로 저는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거든요. 실수를 하면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숨기기보다, 그냥 솔직하게 말씀드리고 용서를 구하는 쪽으로 변화시켰습니다.
'미움 받을 용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작고 큰 실수를 할 수 있는 법이고, 중요한 건 그때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숨기기보단 솔직하게 도움을 구하고 상황을 해결하는 것도 능력 중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만 않으면 됩니다.
과거의 실수를 현재의 나로 확장하는 건 인간의 자연스러운 인식 구조입니다. 우리는 자신을 연속된 존재로 이해하고, 사건을 자아 이야기 속에 통합합니다. 하지만 모든 행동이 곧 본질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과거의 한 장면은 현재의 전체를 규정할 수 없고, 우리는 변화하는 존재입니다. 실수를 자아의 핵심으로 고정할 것인지, 경험의 일부로 남길 것인지는 해석의 문제입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과거의 실수를 발판 삼아 더 높은 곳으로 성장하는 게 우리가 할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