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발표를 앞두고 동료에게 "별로 준비 못 했어요"라고 말하곤 합니다. 사실 며칠 밤을 새워 자료를 다듬었는데도 말이죠. 반대로 처음 해보는 일을 맡았을 때는 "한번 해보겠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말합니다. 속으로는 떨리지만, 자신감 없이 시작하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같은 사람인데 상황에 따라 저를 부풀리기도 하고 축소하기도 합니다. 왜 우리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걸까요.
자신 있는 일에선 과소평가, 자신 없는 일에선 과대평가하는 이유
철학과 심리학은 인간이 자신을 해석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우리는 능력을 숫자로 계산하지 않고, 감정과 경험 속에서 의미를 부여합니다. 저도 이 패턴을 제 안에서 발견했습니다. 잘하는 일에서는 일부러 자신을 낮춥니다. 거만해 보이고 싶지 않고, 혹시 모를 실수를 대비하려는 심리가 작동합니다.
반면 자신 없는 일에서는 스스로를 끌어올립니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마음속으로 되뇌며 용기를 만들어냅니다. 실제로 자신감이 없는 상태로 일을 시작하면 잘 될 일도 꼬인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이건 단순한 긍정 마인드가 아니라, 심리 상태가 결과에 영향을 준다는 현실적 판단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자기 고양 편향과 자기 비하 편향으로 설명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공을 자신의 능력으로, 실패를 외부 요인으로 돌립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은 성공을 우연으로 축소하고 실패를 본질로 확장합니다. 저처럼 상황에 따라 전략적으로 평가를 조정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존감을 지키거나 동기를 만들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장치인 셈입니다.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만 관대한 이중 잣대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에게는 객관적이지 못합니다. 잘했을 때는 자기 탓으로 돌리고, 못했을 때는 상황 탓을 합니다. 물론 정말로 외부 요인이 작용한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자신을 보호하려는 무의식적 방어기제입니다. 반대로 타인의 성공은 운이나 환경으로 설명하고, 실패는 능력 부족으로 단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이 이중 잣대가 위험하다고 봅니다. 자신만 과대평가하고 상대방을 과소평가하면, 협력 관계가 무너지고 성장 기회를 놓치게 됩니다. 오히려 반대로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을 과대평가하여 배울 점을 찾고, 저 자신을 과소평가하여 겸손함을 유지하는 겁니다. 솔직히 이게 쉽지는 않습니다. 자존감이 흔들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제 경험상, 사람마다 분명한 재주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기획에 강하고, 누군가는 실행에 뛰어납니다. 그 재주를 옆에서 살려주는 서포터 역할도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자기 평가의 완벽한 객관성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를 도우며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회적 비교도 평가 왜곡에 큰 영향을 줍니다. 누구와 비교하느냐에 따라 저는 유능해지기도 하고 부족해지기도 합니다. 절대적 기준이 아니라 상대적 위치가 평가를 좌우합니다. 철학은 인간이 타인을 통해 자신을 인식한다고 말합니다. 제가 자신 있는 일에서 스스로를 낮추는 것도, 주변의 더 뛰어난 사람들과 비교한 결과일 수 있습니다.
자기 평가는 사실이 아니라 해석입니다. 현재의 감정, 최근의 경험, 비교 대상에 따라 언제든 달라집니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순간, 우리는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을 여지를 갖게 됩니다. 저도 여전히 상황에 따라 저를 부풀리거나 축소하지만, 이제는 그게 전략인지 방어인지 구분하려고 노력합니다. 지금의 자기 평가가 사실인지, 아니면 하나의 해석인지 질문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조금 더 유연하게 저를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