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는 회사에서 야근을 자주 했습니다. 동료들은 이미 퇴근했지만 저는 제 작업물이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수정했습니다. 집에 가서도 내일 시도해볼 방법들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습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완벽주의라고 말했지만, 저는 그냥 제가 만족할 때까지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주변에서 "이 정도면 충분해"라고 말해줘도 제 안에서는 아직 부족하다는 신호가 계속 울렸습니다.
철학과 심리학은 인간이 끊임없이 더 나은 상태를 상상하는 존재라고 설명합니다. 목표를 달성해도 새로운 기준이 설정되고, 만족은 오래 머물지 않습니다. 저 역시 그 반복 속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충분함이라는 감정은 누가 정해주는 걸까요.
자기만족은 타인이 줄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충분하다"고 말해주는 것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저도 그랬고, 제 주변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상사가 결과물에 만족해도 제 스스로가 불만족스러우면 그 일은 끝나지 않았다고 느껴졌습니다.
어떤 분들은 타인의 평가를 중요하게 여기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객관적인 시각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저는 그 의견도 이해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조금 다릅니다. 타인의 기준으로 충분함을 정하면 그 순간은 안도감이 들지만, 곧 공허함이 찾아왔습니다. 제 안에서 인정하지 않은 결과는 결국 제게 남지 않았습니다.
철학은 인간이 자기 평가를 통해 자아를 구성한다고 봅니다. 심리학도 자존감이 외부 평가에만 의존하면 불안정해진다고 설명합니다. 제 경험상 이건 맞습니다. 제가 스스로 납득해야 비로소 그 일이 제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일반적으로 남의 시선을 너무 무시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알려져 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내 기준을 먼저 세우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타인의 피드백은 참고할 수 있지만, 최종 판단은 제가 내려야 했습니다.
완벽주의는 채찍질인가 성장인가
저는 이왕 하는 일이라면 확실하게 하고 싶었습니다. 어설프게 할 거면 아예 안 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떤 프로젝트든 제가 만족할 때까지 수정을 반복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야근도 잦았고, 쉬는 시간에도 일을 생각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이건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정도밖에 못 한 제 자신에 대한 채찍질이었던 것 같습니다. 완벽주의라는 이름 아래 저는 계속 스스로를 몰아붙였습니다.
완벽주의를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 높은 기준이 더 나은 결과를 만든다는 논리입니다. 저는 이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실제로 그 덕분에 좋은 성과를 낸 적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시에 대가도 있었습니다. 끝없는 수정과 불만족은 때로 피로와 회의감으로 이어졌습니다.
심리학은 적응 현상과 기준 상승 효과를 설명합니다. 성과에 익숙해지면 그것이 기본값이 되고, 더 높은 목표가 눈에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저도 그 패턴을 반복했습니다. 어제의 성공은 오늘의 당연함이 되었고, 만족의 문턱은 계속 올라갔습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해봐야 한다는 생각은 아직도 제게 남아 있습니다. 이게 나쁜 건지 좋은 건지는 여전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이 태도가 저를 성장시켰지만, 동시에 지치게도 만들었다는 건 분명합니다.
충분함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에도 있다
충분함이라는 감정은 성공에만 연결되어 있지 않습니다. 저는 실패한 프로젝트에서도 충분함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결과는 제 기대에 미치지 못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결과 중심의 평가가 중요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과를 내야 인정받는 구조니까요. 저는 그 현실을 부정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제가 시도해 볼 수 있는 것들을 다 해봤다면, 비록 결과가 좋지 않아도 후회는 덜했습니다.
철학은 인간을 지향적 존재로 보지만, 동시에 유한한 존재로도 봅니다. 저희는 모든 걸 완벽하게 해낼 수 없습니다. 잘하는 일이 있고 못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한계를 인정하는 것도 충분함의 한 형태일 수 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노력했음에도 안 되는 일은 어쩔 수 없다고 받아들이려 합니다. 물론 자존감이 내려가고 실망감이 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제가 시도했다는 점 자체에서 의미를 찾으려고 합니다.
노력했다는 이유로 스스로를 칭찬하는 게 자기합리화라고 보는 분들도 있습니다. 결과를 내지 못했는데 무슨 칭찬이냐는 거죠. 저는 이 의견도 이해하지만, 실제로 살아보니 조금 다릅니다. 제가 후회 없이 노력했다면 그 자체로 제게 의미가 있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저는 계속 "그때 더 해볼 걸"이라는 생각에 시달렸을 겁니다.
사람은 완벽한 존재가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과만큼이나 과정도 중요합니다. 제가 나 자신에게 후회 없을 만큼 노력했다면, 저는 제게 "고생했다"고 말해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충분함은 외부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 철학과 심리학이 설명하듯 우리는 끊임없이 더 나은 상태를 상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스스로 기준을 선택할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타인의 평가가 아니라 제 안의 판단으로 충분함을 정의할 때, 저는 비로소 진짜 만족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결과가 좋든 나쁘든,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건 그 기준을 제가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