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사를 나와 저만의 길을 찾는 중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 길로 갔다면 지금쯤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후회라는 감정은 참 집요해서, 이미 지나간 갈림길 앞으로 자꾸 저를 데려다 놓습니다. 그런 저에게 이 소설은 아주 솔깃한 가정을 던졌습니다. 만약 되돌아가서 다른 선택을 해볼 수 있다면, 정말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매트 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는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거부당했다고 느끼는 여자, 노라의 이야기입니다. 수영선수를 꿈꿨고, 뮤지션을 동경했고, 철학을 공부하고 싶었고, 가정을 이루고 싶었지만,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도달하지 못한 채 가장자리에서 표류하던 사람. 결국 삶을 놓기로 결심한 그녀 앞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도서관이 나타납니다. 그곳의 책들은 각각 그녀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살았을 삶들입니다.
후회를 되돌리는 여행
노라는 첫 번째 후회부터 되돌립니다. 결혼 직전에 파혼했던 남자와 결혼해 시골에서 펍을 운영하는 삶으로요. 사랑도 이뤘고 꿈꾸던 가게도 열었으니 천국일 줄 알았죠. 하지만 그곳 역시 천국이 아니었습니다. 성공은 실현되는 순간 빛을 잃고, 노라가 그토록 바랐던 삶은 더 이상 그녀가 바라는 모습이 아니었으니까요.
그 후로도 노라는 여러 삶을 탐험합니다. 친구와 함께 훌쩍 떠나는 삶, 모든 것을 포기하고 수영에만 매달려 성공한 삶, 의미를 좇아 극지방에서 연구하는 삶까지. 그런데 어느 삶에도 예상치 못한 절망과 좌절이 숨어 있었습니다. 사랑, 우정, 성공처럼 그럴듯해 보이는 것들 속에도 각자의 후회가 자리하고 있었던 거죠.
그러다 자신처럼 여러 삶을 떠도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는 이미 수백 번의 삶을 살아봤다고 고백합니다.
그런데도 아직 내가 원하는 삶은 찾지 못했어요.
이 대목에서 저는 아득해졌습니다. 300번을 바꿔봐도 마음에 쏙 드는 삶을 고르지 못했다니. 그렇다면 완벽한 삶이란 잡히지 않는 신기루일 뿐일까요.
그 꿈은, 사실 내 꿈이 아니었다
이 소설이 진짜 무릎을 치게 만든 건 그다음이었습니다. 노라가 그토록 여러 삶을 살아보고도 만족하지 못한 이유. 그건 그녀가 골라온 삶들이 애초에 자신이 원한 삶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펍을 운영하는 삶은 연인 댄의 꿈이었습니다. 함께 떠나는 여행은 친구의 꿈이었고, 올림픽 수영 메달리스트는 아버지의 꿈이었으며, 밴드는 오빠의 꿈이었습니다. 노라는 남의 꿈을 자기 꿈이라 믿으며 후회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대목에서 뜨끔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온전히 나만의 생각이란 게 얼마나 될까요. 대부분은 어디선가 보고 들은 것들이고, 타인의 기대와 바람은 알게 모르게 스며들어 마치 처음부터 내가 원했던 것처럼 내 삶을 조종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길, 부러워하는 자리를 향해 달리면서 그게 제 꿈인 줄 알았거든요. 회사를 나오고 나서야 비로소 물어보게 됐습니다. 그중 진짜 내가 원한 건 몇 개나 됐을까.
중요한 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결국 이 소설이 하려는 말은 명료합니다. 완벽한 삶은 없다는 것. 무엇을 보느냐보다 어떻게 보느냐가 중요하다는 것.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는 대신,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찾으라는 것.
인생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그저 살아내면 된다.
후회에 지배당해 시간을 낭비하지 말라는 이야기죠. 행복은 되고 싶은 사람이 되었다고, 원하는 것을 다 이뤘다고 오는 게 아니라, 지금 이 순간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고 두려움에 맞서는 그 순간에 있다는 것. 노라가 도서관을 떠나기 전 마주하는 텅 빈 책처럼, 우리 인생도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페이지일지 모릅니다. 그 빈 곳을 하나씩 채워나가는 과정 자체가 삶의 의미라는 걸, 이 소설은 조용히 일러줍니다.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가장 좋았던 점은 '선택'과 '후회'라는 누구나 품고 사는 주제를 손에 잡히게 풀어냈다는 것입니다. 노라가 겪는 여러 삶과 그 안에 각기 다르게 숨어 있는 후회의 지점들을 지켜보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특히 '내 꿈인 줄 알았던 것이 사실 남의 꿈이었다'는 통찰은, 진로나 방향을 고민하는 사람에게 꽤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아쉬운 점도 있습니다. 솔직히 주제 자체는 평이합니다. '완벽한 삶은 없다', '지금에 충실하라'는 메시지는 이미 여러 번 들어본 이야기죠. 소재인 평행우주와 다중우주도 대중문화에서 워낙 많이 다뤄져 신선하진 않습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결말이 어느 정도 예상되기도 하고요. 하지만 이 소설의 미덕은 새로움이 아니라 익숙한 진실을 다시 만지게 해주는 데 있습니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정작 살아내지 못했던 그 말들을요.
선택 앞에서 망설이는 분, 지나간 결정을 후회하며 밤을 뒤척이는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책을 덮으며 질문 하나를 챙겼습니다. 지금 내가 좇고 있는 이 길은, 정말 나의 꿈인가. 되돌아갈 수 없는 갈림길을 아쉬워하는 대신, 아직 백지인 앞쪽 페이지를 어떻게 채울지 궁리하는 편이 낫겠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을 다시 확인한 것만으로도, 이 도서관에 다녀온 값은 충분했습니다.
개인적인 독서 경험과 감상을 담은 서평이며, 결말과 주요 전개는 최대한 밝히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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