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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 따뜻한 소설을, 따뜻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로 읽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 서평 - 따뜻함을 받아들일 수 없는 상태로 읽었다

먼저 솔직하게 적습니다. 이 소설은 따뜻합니다. 다만 제가 그 따뜻함을 온전히 받아들일 상태가 아니었을 뿐입니다. 같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의 마음 상태에 따라 다르게 닿는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새삼 느꼈습니다.

《세상의 마지막 기차역》은 탈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그들을 떠나보낸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사고가 난 그 열차가 밤마다 다시 달린다는 소문이 돌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이 하나둘 그 열차에 오릅니다. 산 사람이, 곧 죽을 운명의 그 사람을 다시 만나러 가는 설정이죠. 오래전 영화 〈사랑과 영혼〉이나 애니메이션 〈코코〉를 떠올리게 하는, 이승과 저승의 경계에 선 이야기입니다.

네 개의 사랑, 네 번의 작별

소설은 옴니버스 형식으로 네 사람의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약혼자를 떠나보낸 연인, 아버지를 여읜 아들, 짝사랑을 눈앞에서 잃은 남학생, 그리고 사고 열차 기관사의 아내. 처음엔 무대가 다른 별개의 연극처럼 읽히다가, 어느 순간 같은 열차의 이야기로 절묘하게 포개집니다. 앞의 이야기가 뒤에서 다시 연결되는 구성의 묘미가 상당합니다.

다만 이 열차에는 지켜야 할 규칙이 있습니다. 그 규칙이 이야기의 긴장과 마지막 반전을 만들어내는데, 구체적인 내용은 직접 읽으며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미리 알고 읽으면 이 소설이 주는 가장 큰 울림 하나를 잃게 되니까요. 반전은 머리를 띵하게 할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충분히 양호하고 마음을 건드립니다.

가장 깊이 박힌 두 장면

여러 이야기 중 제 마음에 오래 남은 건 연인의 이야기였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먼저 떠나보낸 그녀가, 마지막으로 '고맙다'는 말을 전하려다 끝내 삼키는 장면입니다.

그건 고마움이 아니었다. 그러니 고마웠다고 말할 수 없다. 안녕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그를 사랑하니까.

고맙다고 말하는 순간 이별을 진짜로 인정하게 될까 봐, 차마 그 말을 꺼내지 못하는 마음. 작별의 인사조차 사랑 앞에서는 이렇게 무력해진다는 걸, 이 짧은 독백이 그대로 보여줍니다.

또 하나는 남학생의 이야기에 나오는 한 마디였습니다. 왜 고백했느냐는 물음에 돌아온 답이 제 머릿속에서 한참 맴돌았습니다.

후회하기 싫었으니까.

실제 책에서도 이 말이 여러 번 반복되며 울려 퍼지는데, 읽는 저에게도 똑같이 그랬습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후회를 안고 살아가는가. 전하지 못한 말, 미뤄둔 마음들이 떠올라 한참을 멈춰 있었습니다.

공감하지 못한 이야기, 그리고 솔직함

모든 이야기가 똑같이 와닿은 건 아니었습니다. 솔직히 아버지와 아들의 이야기에는 가장 공감하지 못했습니다. 많은 독자가 이 부분에서 부모의 사랑에 눈시울을 붉힌다는데, 제게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2000년 이후 제가 아버지와 만난 시간을 다 합쳐도 한 달 남짓이거든요. 그 거리가, 책이 그리는 따뜻한 부자(父子)의 정에 제가 온전히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이 책의 단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좋은 소설의 증거에 가깝습니다. 같은 이야기가 누군가에게는 가장 큰 눈물의 지점이 되고, 누군가에게는 비껴가는 것. 그건 소설이 충분히 구체적이고 진실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니까요. 제가 받아들이지 못한 건 책의 문제가 아니라, 지금 제 마음의 문제였습니다.

책이 알려준 색다른 것

읽다가 처음 알게 된 것도 있습니다. 일본에는 '심료내과'라는 진료과목이 있다고 합니다. 심리적 측면에서 내과 질환을 치료하는 과목인데, 한국 출판사가 주석까지 달아 설명해둔 걸 보면 우리에게는 낯선 개념인 모양입니다. 같은 서양의학을 들여왔는데 왜 이런 차이가 생겼을까, 잠시 궁금해졌습니다. 작품 속에 흐르는 〈사랑의 인사〉라는 곡도 찾아 들어보니, 제목은 낯설어도 멜로디는 익숙한 곡이었습니다. 소설을 읽고 그 음악까지 찾아 듣는 경험은, 이야기의 여운을 한 번 더 늘려주었습니다.

좋았던 점과 아쉬운 점

가장 좋았던 점은 무게감입니다. 일본 소설 특유의, 가볍지도 무겁지도 않은 중용의 무게로 죽음과 사랑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부담 없이 풀어냅니다. 옴니버스가 하나로 모이는 구성, 산 자와 죽은 자가 나누는 위로,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이 서로의 슬픔에 연대하는 과정이 마음을 따뜻하게 데웁니다.

아쉬운 점을 굳이 꼽자면, 이런 류의 '죽은 이를 다시 만난다'는 설정이 주는 감동이 다소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흐른다는 것입니다. 반전도 좋지만 충격적이진 않고, 네 이야기의 정서가 비슷해서 후반부로 갈수록 패턴이 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애초에 놀라움을 노리는 책이 아닙니다. 예고 없이 닥친 이별 앞에서 전하지 못한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이야기이고, 그 목적에는 충분히 충실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있는 분, 그리고 전하지 못한 말을 마음에 품고 있는 분께 권하고 싶습니다. 저는 지금 그 따뜻함을 다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마음이 조금 더 단단해진 어느 날 이 책을 다시 펼치면, 그때는 분명 다르게 읽힐 것 같습니다. 좋은 책은 그렇게, 읽는 사람을 기다려주니까요.


개인적인 독서 경험과 감상을 담은 서평이며, 결말과 주요 설정은 최대한 밝히지 않았습니다.